최강야구
장원삼은 최강 야구에서 1507일 만에 라이언스 파크 마운드에 서게 되어 낭만 야구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3구 삼진까지 해버려 낭만의 끝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공은 루킹 삼진이었다.
최강야구 초반에 야구 인생 처음으로 팔꿈치 부상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된다.
병원에 가보니 뼛조각이 가로막아 초음파로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결국 MRI 촬영을 했고 그 결과 인대의 8할이 뼈로 변했다고 한다. 그만큼 선수 시절 팔을 많이 사용했다는 증거이다. 나머지 20프로의 손상이 생겼다고 한다.
그로 인해 휴식을 취하며 응원 단장 역할과 예능을 하고 있다.
류현인이 야구 배트의 사인을 엉망으로 하자 "그리 사인하면 땔감 된다", 고등학생 선수가 구속 148을 던진다고 하자 "나는 128키로 던진다 생퀴야" 첫 회 버스 안에서 "끝날 때 몇 명이나 남겠노"라는 드립을 날려 큰 웃음을 선사했다.
결국 경질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내 야구는 가을부터다" 그의 단장이 아직 한여름이라고 하자 "금방 갑니다"라고 대답했다.
가을이 되자 귀신같이 활약하기 시작했고 구속은 느리지만 살아있는 제구력을 보여주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를 실천하는 야구를 했다. 전설은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경성대 레전드
장원삼은 1983년생 창원 출신이다.
사파초, 창원 신월중, 마산 용마고를 나왔다.
2002년 2차 11라운드 현대 지명되었으나 경성대학교에 진학하여 4년간 통산 32승 4패 평균자책 0.34라는 미친 기록을 세웠다. 2004년 세계대학선수권 대회 캐나다를 상대로 승리 투수까지 하였다.
유니콘즈, 히어로즈
2006년 프로에 데뷔해 12승 10패 평균자책 2.85를 기록해 신인왕 후보였으나 류현진이라는 괴물로 인해 물 건너갔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리그 정상급 투수로 성장하여 장원삼이 최고 전성기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승운이 없었다.
계투진이 날려먹거나 타선에서 점수를 내주지 못했다. 특히 2008년엔 팀이 엉망 진창이었다.
삼성 라이언즈
2009년 12월 레전드의 길에 들어갈 수 있게 한 삼성 유니폼을 입어 삼성 왕조 시절의 일원이 되었다.
박성훈과 김상수와 35억에 장원삼을 트레이드 했다.
첫 시즌 2010년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2011년 특히 한국시리즈 2차전에 출전해 삼진 10개와 무실점 호투하여 삼성을 우승으로 견인했다.
그 후 아시아 시리즈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여 6이닝 1 실점 호투로 승리하였고 대한민국 선수로 유일하게 아시아 시리즈 mvp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골든글러브
2012년 17승으로 리그 최다승을 하여 골든 글로브 수상을 하였다. 그러나 골든 글로브는 독이 든 성배였다.
16승 평균자책점 2.20을 기록한 넥센의 브랜드 나이트가 받아야 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생긴 것이다.
장원삼의 평균 자책점은 3.55, 22명의 투수 중 16위였다. 투구 수도 장원삼 157이닝, 나이트는 208이닝, 50이닝이나 차이가 났기에 팀발로 승리를 챙겨 우승을 했다는 등 욕을 먹었다.
또한 운 좋게 우승 팀에 소속되었기에 다른 팀에 있었으면 못 받을 상을 받았다고 장훈삼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두 경기 출전해 선발 투수들 중 제일 좋은 활약을 했고 역시 우승은 삼성이 했다.
FA
시즌이 끝난 후 FA를 했다. 역대 투수 FA 중 최고액인 60억을 받았다. 이것 또한 독이든 성배였다.
2014년 한국시리즈 3차전 선발 등판하여 6이닝 6 삼진 1 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봉쇄하였고 팀은 승리하였다. 이번에도 우승훈 역시 삼성이었다. 저축의 날 행사에서 운동선수 중 유일하게 금융위원장 표창을 수상했다.
2015년 좌한 투수로 역대 두 번째 10승을 달성하였으나 시즌 내내 구위가 좋지 못했다.
부진하는 모습을 보이자 류중일 감독에게 "돈 내 나라 먹튀야"라는 말을 들었다.
2016년 본격적으로 먹튀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5승 8패 평균자책 7.01
2017년 4승 5패 평균자책 5.61을 기록했다.
4년이 계약이 끝나고 연봉 7억 5천에서 5억을 삭감한 2억이 되었고, 2018년 부상과 부진으로 3승 1패 평균자책 6.16을 기록 팀의 방출을 요청했다.
LG 트윈스
2019년 여러 구단에서 제의가 왔지만 류중일 감독이 있고 익숙한 환경인 LG를 선택했다.
키움과의 경기 선발 등판에 투구한 볼이 타자 임병욱의 몸에 살짝 스쳤다.
이때 혼잣말로 "아~ ㅅㅍㅅㄲ 좀 피하지~ ㅅㅂㄴ이" 이라고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 논란이 되었지만 웃기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그리고 간절해 보였다.
구위가 나아지지 않아 시즌 통산 8경기 평균 자책 7.98을 기록했다.
결국 lg에서 방출당했고 선수 생명이 위태로웠지만 장원삼은 야구 인생을 더 이어가고 싶어 했다.
마지막 롯데 지이언츠
롯데에서 손을 내밀었고 롯데의 입단 테스트를 봐야 했다.
나이가 있어 체면이 구겨지는 느낌이었지만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은 마음과 구단에게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임했다. 결국 연봉 3천만 원에 계약했다.
은퇴
2020년 시즌이 끝난 후 장원삼은 방출되었다.
사직구장에서 마지막 경기를 하였고 그 경기가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또 경기를 하겠지 생각했는데 은퇴를 하게 되었다.
다른 레전드들처럼 은퇴를 예고하고 은퇴 경기가 잡히면 준비하고 싶은 아쉬움이 있었다.
자신이 은퇴 경기 날짜를 아는 것이 진짜 레전드라고 덧붙였다.
레전드
국제 경기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 kbo 통산 121승, 1202삼진, 3 완투, 2완봉, 한국시리즈 4회 우승이라는 미친 커리어를 보유한 레전드가 되었다.
TMI
삼성 선수 생활 당시 재미있었을 때는 2011년부터 2014년 한국시리즈 4연패를 했을 시기라고 한다.
어린이날 경기에서 무적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섯 번 등판하여 전부 승리를 따냈다.
한때 미남이었으나 삼성 이적 후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삼족화라는 말의 창시자이다.
마운드에서 낭심 보호대를 착용했다고 한다. 현대 시절 이틀 연속 낭심에 공을 맞은 적이 있다고 한다. 류현진이 인터뷰에서 장원삼이 낭심 보호대를 폭로하였다.
야구계의 유재석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모교에 1억 7천만 원을 기부했고 병원 도우미, 재능 기부 등 선행을 했다.
코로나 때 의료진을 위해 도시락 후원과 힘든 자영업자들을 위해 자신의 소유 건물에 임대료를 인하해 주었다.
삼성 라이언즈 원정 도박 논란 때 장원삼을 좋아하는 삼성 팬들이 많아졌다.
안지만이 논란으로 집에서만 생활할 때 소주와 현금 100만 원을 들고 찾아갔다고 한다.
새삼 다시 한번 장원삼 선수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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