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야구
계속해서 성장 드라마를 쓰고 있는 이홍구는 유소년 선수들의 코치로 일하는 중 최강야구가 회사 대표에게 이홍구의 출연을 제의했다.
최강야구의 촬영 날인 월요일은 야구 아카데미에서 가장 바쁜 날이었기에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일 수 있지만, 대표는 허락해, 다시 한번 야구할 수 있음에 감사했지만 위기가 찾아온다.
최강 야구의 레전드들 사이에 자신이 끼어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영광이었지만 그만큼 부담이 컸고 야구를 그만뒀다가 다시 하려다보니 입스가 심하게 오게 됐다.
그로 인해 너무 잦은 실수를 연발하게 되었다.
입수로 인해 송구 실패는 당연했고 포구 미스도 너무 난발했다. 콜드패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실수를 하고 나면 진짜 죽을 것만 같았다.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다. 인스타 디엠으로 욕도 오지에 많이 먹었다. 그래도 자신을 응원해주는 댓글이 많았고 동료들의 원이 있었기에 너무 힘들어도 반드시 극복해야만 했다.
결국 타격감이 살아나게 되었다.
중요한 타이밍에 타점과 홈런 등을 만들어 냈고 최강 야구에서 MVP를 받게 되었다.
그동안의 울분이 터져 눈물이 나왔다. 또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멋진 활약을 펼쳐 최고의 코치님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동안의 설움을 전부 떨쳐낼 수 있었고 아직도 야구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구나 느꼈다. 이젠 강력한 타격과 피글렛 닮은 귀여움까지 장착했다.
입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입스을 생소해 할 수 있지만 골프, 야구, 농구, 선수와 피아니스트가 걸릴 수 있고 심리적 불안으로 인해 신체적인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심리 상담과 정신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이다.
계속 불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잘못된 상황을 계속 상상하게 된다.
너무 힘들어하는 이용구를 선배이자 동료인 송승준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로 인해 완전하진 않지만 극복할 수 있었고 송승준에게 다가가 포옹하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송승준에게 영상 편지도 남겼다.
김성근 감독이 이홍구에게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살이 찌면 어떡하냐 지적을 받아 3주 만에 9kg를 감량했다고 한다
이홍구
이홍구는 1990년생 키는 180이다. 장충고와 단국대 출신이다.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야구를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가끔 한강에서 야구를 하다가 흥미가 붙었다.
결국 이홍구를 야구 선수 시키기로 결정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바라는 이용구의 포지션은 투수였다. 그러나 포수를 하게 되었다. 포수는 시켜서 하게 된 것이 크다.
등치가 크고 뚱뚱하다 보니 포수를 하게 되었다. 키가 크니까 농구를 해라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런데 포수는 빠릿빠릿해야 한다. 멘토가 있었다기보다 혼자 야구하기 바빴던 것 같다. 누구를 멘토로 생각하기보다 특공대로 열심히 했다.
단국대
대학 야구에서 강력한 타격을 장착한 포수로 유명했다.
2012년 전국 야구대회에 연타석 홈런, 끝내기 홈런 등 타격 능력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러나 포수의 능력에서 부족한 면이 있다는 평가가 있었다. 도루 저지 블로킹 등이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아 타이거즈 입단
2013년 2라운드 전체 14번 기아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된다.
드래프트에서 이름이 호명되었고 카메라 원샷을 받게 되었다. 그때 약간 띠꺼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기아 팬들이 본 것이다.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기아가 싫은 것이 아닌가 하는 혼자만의 걱정이 있었다.
2013 시즌 기아의 포수진이 6명이나 되기 때문에 경쟁이 힘들었고 이홍구는 강한 타격을 장착하고 있기에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니퍼트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때려냈다. 커리어 첫 번째 만루 홈런을 니퍼트에게 뽑아낸 것이다.
2014년 1군에 콜업되지 못하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2015년 1군에서 두 자릿수 홈런과 나름 포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지만 2할 1푼 6리의 낮은 타율을 기록했고 수비도 불안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2016년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타율 2할 6푼 6리, 64안타 ,9 홈런을 기록했다.
2016 시즌이 끝나고 군대 가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때 당시 포수 포지션에서 경쟁하던 선수가 십자인대 부상을 당했다. 단장이 이홍구에게 1년만 더 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고 시합을 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7년도 본 게임에 들어가니 성적이 좋지 않았다. 2군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바로 SK에 트레이드 되었다.
펑펑 울었다고 한다. 기아에 대한 애정이 컸기 때문이다.
은퇴 후 기아라는 팀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좋은 팀이고 첫 팀 그리고 제일 오래 했기 때문이다.
1군에서 뛸 수 있었던 15, 16 시즌이 가장 좋았다. 이홍구가 없어지고 나서 우승을 했다.
SK
2017년 SK로 가서 레전드 포수였던 박경환에게 지도를 받았다.
두 자릿수 홈런을 만들긴 했지만 부상과 부진으로 성적이 안 좋았다.
병역
경찰 야구단에 지원했으나 떨어졌고 더 이상 군 복무를 미룰 수 없었기에 2018년 현역 입대하게 된다.
보직은 81미리 박격포병이었다. 전역 후 2019년 12월 결혼했다.
KT
2020년 트레이드로 케이티 위즈에 가게 되었다.
2년 가까이 되는 공백으로 실전 감각이 너무 떨어져 간혈적으로 경기에 출장했다.
2021년 10월 계속되는 부진에 kt에서 방출되었고 kia 타이거즈 입단 테스트를 봤으나 떨어졌다.
이른 나이에 은퇴하게 된 것이다.
TMI
어린 나이부터 탈모가 진행되었고 기아 스틴슨과 탈모 배터리라 불리었다.
탈모의 원인이 양현종이라는 장난 섞인 짤이 있었다.
누군가 이런 삼행시도 지어주었다.
이 이홍구
홍 홍구 머리에
구 구멍 났대요
라고 탈모인의 가슴에 구멍을 내버렸다.
그럼에도 항상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예의 바른 모습을 보여준다.
프로 선수로 있을 때 술은 입에도 안 됐다.
항상 겸손한 모습과 선한 모습을 보여주는 착한 이용구 선수의 성장 스토리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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