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32MlRqjawdjQ2WWtW5ZHpQs4JQ3BxALmmTkTPYh-GT4 최강야구 이택근 - 재미있는 이야기
TV & 스타 & 영화 / / 2023. 2. 7. 17:44

최강야구 이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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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가 갖추어야 하는 능력인 파워, 스피드, 컨택 능력, 수비, 어깨 등이 있다. 

모든 능력을 오각형으로 골고루 잦춘 선수 이자 팀을 위해 노력하는 이택근의 이야기이다.

 

 

은퇴한 야구 선수가 외야에서 홈 보사를 시키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웅장해 진다. 폼은 일시적이나 클라스는 영원했다. 
이택근은 선수 시절 더 안타를 치고 더 많은 홈런을 칠 수 있었다. 그러나 항상 팀을 위한 플레이를 많이 생각했다. 

 

초구를 굉장히 좋아하는 타자인데도 초구는 안치려고 노력한다 .게임의 흐름에 따라 투수가 던지는 공의 횟수가 많아져야 팀이 이길 수 있는 방향으로 가기에 참아야 할 때 참을 수 있는 선수이다. 개인 기록을 우선시했다면 하기힘든 생각이다. 

처음 최강야구에 출연하기로 마음 먹고 단장을 만났을 때 "여기서 슈퍼스타가 돼보겠다. 필요한 상황이 되면 쉴 것이고 욕심을 내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음처럼 안 되었다. 타석에 들어서게 되면 팀 배팅을 버릇처럼 하게되었고 자신이 어떤 선수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최강야구를 보면 항상 묵묵히 경기를 한다. 분명 mvp를 여러 번 받을 법 했지만 오랫동안 받지 못했다. 
mvp를 받고 싶어 했고 결국 구걸까지 했다. 창단 후 24경기 만에 mvp를 받게 되었고 너무 기쁜 나머지 앞구르기로 세레머니를 했다.

최강야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아들 때문이라 아빠가 야구장에서 야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아빠를 골프 선수로 알고 있다. 아빠가 이런 야구 선수였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자녀들이 직관을 온 경기에서 뜬볼 아웃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너희 아버지는 히어로즈의 레전드이란다.

두 번째 이유는 은퇴 전 어떠한 일 때문에 팬들에게 인사를 못하고 유니폼을 입고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 
멋있게 mvp를 탄 후 팬분들에게 하지 못했던 인사를 했다. 

 

김성근 감독과 인연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과 같이 해보고 싶었다.

선수들은 김성근 감독과 야구를 하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야구를 하시는지 배워보고 싶고 굉장히 궁금했다.

 


외야수로 활약했다. 지금 현재도 하고 있는 이택근은 2003년 포수로 프로에 입단했다.
그러나 시합을 나가기 위해 포수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포수로는 설 자리가 없었던 프로 무대였기에 슬프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강 야구에서 다시 한 번 기회가 왔다. 이홍구가 입수로 힘들할 시기 대신해서 나가게 됐었고 팀을 위해 선뜻 나서기로 했다. 약 20년 만에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되었다.
선수 생활 동안 아쉬웠던 부분이고 포수는 아픈 손가락이다. 그래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오주원과 19년 만에 호흡을 맞춰보았다. 그 결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다. 


아기 때부터 같이 운동하던 선수들이기 때문에 그들과 야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찡한 감정이든다.
히어로즈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것이 야구 선수로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이택근은 1980년생 키는 183이다. 
경남상고를 나왔고 대통령배 전국 고교 야구대회 우승을 이끌었던 포수 유망주였다. 

 

1999년 현대 유니콘스에 지명받았으나 고려대에 진학하였다.
대학 시절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대만 월드컵에 출전했다. 

 

대학 졸업 후 현대에 계약금 2억 3천만 원에 입단하게 되었다. 
현대 유니콘즈에 들어가자마자 두 번 우승을 했다. 세상에서 우승이 가장 쉬웠다. 그러나 알고 보니 우승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현대에서 포수로 뛸 수 있는 티오가 없었기에 1루수와 3루수를 오가다가 2006년부터 외야수로 전향했다.

첫 시즌 투수 이동학과 신인왕 경쟁을 벌였지만 두 표 차로 수상에는 아깝게 실패했다. 
2005년 많은 타석에 나선건 아니지만 3할 3푼 1 2위 고타율을 기록했다.

2006년부터 중견수로 전향해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뛰면서 전반기에만 9홈런을 기록해 홈런 레이스에 출전하였다. 
이때 모두 양준혁이 우승할 줄 알았지만 이택근이 결승에서 홈런 하나를 치고 우승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연속 3할 타율에 4할 출루를 기록하면서 리그 최정상급 외야수로 성장했다. 


2009년 자신의 도루 최다 기록인 15홈런 43 도로를 기록하여 골든글로브도 수상했다. 
포수에서 외와수로 전향한 성공적인 케이스이다. 


팀원들이 감기에 걸릴까 봐 매번 방을 돌아다니면서 에어컨을 끄고 햄버거 셔틀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 불펜 포수가 없어 불펜 포수를 보는 모습에서 이런 호감으로 인해 팬들이 많아졌다.

 


이렇게 히어로즈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 잡는 것처럼 보였으나 구단의 자금난으로 인해 2009년 말 강병우, 박영복과 현금 38억 원을 대가로 lg 트윈스의 트레이드 되었다.

lg에서 시즌 초반 7경기를 뛰고 허리통증을 이유로 2군에 내려갔다. 2009년 시즌을 마치고 무릎 수술을 받은 후 페이스를 끌어 올리려다 무리를 한 탓에 허리 상태가 나빠진 것이다.

박용택과 함께 후반 3개월 동안 괴물 같은 타율 상승폭을 보이며 결국 2010시즌을 타율 3할3리로 마무리했다. 이때 9월에만 4할 3푼 1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lg에서의 성과 부상이 너무 자주 발생하는 유리몸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먹튀라는 논란이 있었고 lg 팬들에게 욕을 많이 먹게 되었다. lg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지 넥센으로 간 후 lg전에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2012년 친정팀 넥센 히어로즈와 4년 총 50억에 계약하며 5할에 달하는 득점권 타율과 준수한 출루율을 보여주며 넥센 타선을 이끄는 존재가 되었다. 


2013년에도 팀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가을 야구에 대한 희망을 드러내었다.
인터뷰에서 다음 fa 때 금액 차이가 많이 나도 다른 팀에 가지 않겠다. 이야기하여 많은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2014년 커리어 첫 20홈런과 장타율 5할을 기록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의 패해 준우승을 했다. 


2015년 20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넥센 히어로즈와 4년 35억원에 계약했다. 이후 주장직을 서건창에게 넘겼다. 

 

2017년 통산 1500안타를 기록했다. 유연한 타격폼으로 안타를 만들어냈다. 

 


2019년 문우람은 승부조작 브로커 기자회건에서 선배에게 야구 배트로 폭행당했고 머리를 7차례나 맞았다고 이야기했다. 가해자는 이택근이었고 2015년 일어난 일이 2019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잘못했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방망이 뒷부분으로 머리를 몇 대 쳤던 건 사실이다. 전날 두발 상태에 대한 지적을 했으나 그 다음 그대로 왔기에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몇 대 쳤다. 다시한번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분명 때린 사람이 잘못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택근은 36경기 출전정지를 당했고 히어로즈 사상 최초의 연구결번으로 거론되는 등 소속팀의 전설로 남을 수도 있었던 선수였으나 안타까운 사건으로 힘들어졌다. 

 

 


2020년 시즌 막판이 되도록 어떤 소식도 안 들리던 와중 키움 구단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택근은 이정우의 인스타 라이브를 통해 은퇴를 선언했으며 히어로즈 선수들이 은퇴식을 열어주었다. 
은퇴식은 동료들의 주최로 이루어졌다. 

 

2020년 11월 키움구단으로부터 방출이 되었다. 그 후 이택근은 키움을 상대로 '품위 손상 징계 요청서'를 kbo에 제출했다. 이택근과 구단과의 갈등 내용은 이렇다.

 

오전 훈련을 마치고 퇴근하려던 키움 2군 선수들에게 남아 있으라는 지시가 있었고 키움 구단 의사회 의장이 등장해 선수들과 캐치볼 등 야구 놀이를 한 영상이 공개되어 파문이되었다.

그들 중에 1.5군 선수도 있었다. 너무 아프고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택근은 선배로서 아무 말도 못한다는 게 창피했다. 


선수들은 오락하는 카드가 아니다. 카드인 것 마냥 감정을 무시한 채 선수들을 대했다. cctv를 돌려 영상 제보자 색출에 나섰고 이택근이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팬이 촬영하고 있는 cctv 영상을 이택근에게 보여주었다. 


펜을 사찰했고 선수한테 그걸 케오라고 시켰다. 그 팬은 이택근뿐만 아니라 히어로즈의 굉장히 오래된팬인데 사찰한다 건 말이 안 된다. 회사 놀이터에 야구장을 만들어 놓고 선수들하고 캐치볼을 한다는 것이 프로야구단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어린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바로 잡아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야구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택근이 시즌 도중 구단 측에 코치 자리를 요구했으나 구단이 거부했고 이후 구단과의 사이가 틀어졌기에 이런 일을 벌인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택근은 구단에서 코치 제의를 하더라도 안 할 생각이다. 힘들게 코치 된 사람들 자리를 뺏는 게 말이 되냐 라고 이야기했다. 은퇴식 제의도 있었지만 거부했다. 결국 키움 구단 의사회 의장이 사과문을 올렸다. 
이택근은 진작에 나왔어야 할 사과문이 올해 마지막 날 겨우 나왔다 여론 무마용 사과가 아니길 바란다. 진심으로 어떤 잘못을 했는지 반성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선수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존중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택근은 선수 시절 사인회 중 미리 사인을 해놓고 팬들에게 알아서 가져가라고 말한 후 자리를 떴다는 소문이 있었기에 팬 서비스가 좋은 선수들과 항상 비교당했다.

 

한참이 지난 후 해명을 했다. 저희는 해명할 기회가 없었다. 너무 답답했다. 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주장이었고 전 선수단이 사인을 하고 있는데 그냥 갔다는 것은 말이안된다. 팬분들이 많이 오시니까 빠른 진행을 위해 사인을 먼저 해놓고 오시는 팬들의 이름을 다 써드리고 한다. 경험이 많으니까 그렇게 한다.

 

사인을 여러잘 해놓고 상위에 올려놓고 내부적 문제 때문에 갑자기 코칭스테프의 콜이 들어왔다. 코칭 스텝은 사인회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잠깐 갔다. 올게 하고 감독과 이야기하고 나갔다. 

 

야외라 바람이 많이 불었고 사인지가 다 날아가 버렸지만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또 사인을 했다. 다음 날 날리가 난 것이다. 상식적으로 팬사인회에서 선수가 그냥 갈 수 없다라고 해명했다. 

 


이 택근은 타율 3할 2리, 1621안타, 136 홈런, 175도루, 골든글러브 2회 수상, 한국시리즈 2회 우승을 기록했다.

선수 시절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에 대해선 상대팀에서 치기 어려운 선수보다는 컨디션이 중요하다. 컨디션만 좋으면 아무리 치기 어려운 공도 칠 수 있다.
뽑으라고 한다면 김광현이다. 이택근은 잘 치긴 했지만 골이 너무 좋았다. 감탄이 나올 정도이다. 

 

현역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 일본을 이긴 경기다. 박용택은 자기가 lg에서 이택근이 있을 때 빼놓곤 자기 자리를 위협받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은퇴식 이후 초중고등학교 야구부를 돌면서 재능기부를 했다.

배우 윤진서와 열애를 한 적이 있고 속옷 화보 촬영을 했다. 


이택근에게 야구한 영혼이고 내 일부이다.


이택근 선수의 꾸준한 활약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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