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32MlRqjawdjQ2WWtW5ZHpQs4JQ3BxALmmTkTPYh-GT4 최강야구 김문호 - 재미있는 이야기
TV & 스타 & 영화 / / 2023. 2. 15. 04:00

최강야구 김문호

반응형

최강야구 김문호
최강야구 김문호

 

최강야구

최강야구 김문호최강야구 김문호
최강야구 김문호

김문호는 입단 테스트를 통해 최강 야구 3회부터 이대은과 합류하였다. 
자신을 롯데의 아픈 손가락이라고 소개했다. 


최강 야구에서도 아픈 손가락이 될 수 없기에 열심히 했음에도 잘 치긴 했지만 임팩트가 없어 2%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대타자답게 5타수 4안타, 5출루 경기를 한 적이 있다. 이날 MVP를 탔다.

타율도 7푼8리를 기록했고 타율 1위까지 올라갔다. 최강 야구 들어오기 전 목표 타율을 이뤄냈다. 


고등학교 이후 야구 인생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이승엽 감독에겐 결국 인정받았고 박용택이 감독 대행 시절, 사회생활 만렙 스킬로 확실하게 라인을 타 중심 타선을 꿰찼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결국 김성근 감독의 눈에 들어오지 못해 대타로 활동중이다.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어필한 적이 있다. 
다행히 어필 성공했다. 대타로 출전하더라도 좋은 작전 수행력을 보여주고 있다. 

 

김문호

김문호는 1987년생 키는 185이다. 
제주도 출신이고 제주도의 야구 천재로 유명했다. 


야구를 하게 된 이유는, 농구를 너무 좋아해서 학창 시절 키가 또래 아이들보다 컸다. 그로 인해 야구 감독님의 눈에 띄게 된다. 게다가 왼손잡이였기에 야구를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 마이클 조던 등번호인 23번을 달고 싶었지만 감독이 10번을 달게 했다. 

 

덕수고

최강야구 김문호
최강야구 김문호

덕수고 2학년 시절 4할 4푼 1리를 기록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주전으로 뛰는 것도 힘들지만 황금사자기, 화랑대기 두 개 대회 mvp를 석권했다.

김현수와 라이벌 구도였다. 고3 때에는 5할 2푼 5리, 고등하고 통산 1.34 9라는 오피스를 기록했다. 
아시아 야구선수 대회 국가대표 리그오프에서 4할 때 타율을 기록했고 고교 시절 천재 타자라는 말이 사실이었다. 

 

롯데자이언츠

최강야구 김문호최강야구 김문호
최강야구 김문호

2006년 2차 3라운드에 지명되어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계약금 1억 2천만 원을 받았다. 

롯데 스카우트들은 김문호와 김현수 중 고민했으나 김문호를 선택했다. 


처음. 프로에 입단했을 때 목표이자 소원은 사직구장에 만원 관중이 찼을 때 홈런을 쳐보고 싶은 것이다. 
2년 차인 2007년 펠릭스 로드리게스에게 초구를 쳐 홈런을 만들었다. 관중석에서 김문호의 이름을 연호해 주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2년 차의 꿈을 이뤘다.

그 후 다시 목표를 잡아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그때부터 폼이 떨어진 거었다.
입단 후 9년간 통산 타율 2할 3분 3리를 기록했다. 


2008년 폼이 떨어진 김문호는 상무로 군 입대를 하게 된다. 
전역 후에도 떨어진 폼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고, 2013년 김시진 감독의 믿음으로 1번 타자에 기용되어 시즌 초반 6경기 4할 3푼 8리의 타율을 기록했으나 기아 전에서 3안타 3 주루사를 한 적이 있다. 하루에 세 번 죽는 남자로 등극했다.
얼마 후 경기에서 기습 번트 후 전력 질주하다 인대 파열을 당하는 부상을 입어 시즌 아웃 되었다. 

 

2014년 7년 만에 홈런을 터뜨렸고 얼마 후 경기에서 3루타, 2루타, 단타를 기록한 상태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하기 위한 홈런 하나가 필요했다. 9회 큼지막한 타구를 날렸고 아쉽게 담장을 맞으며 3루타가 되었다.

 

2015년 천재 타자의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3할 6리, 88안타, 4 홈런을 기록했다. 

최강야구 김문호최강야구 김문호
최강야구 김문호


2016년 드디어 포텐을 터트린다 나이 서른에 포텐이 터진 것이다. 이때 대타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문호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시즌이었다.

3할 2푼 5리, 171안타, 7 홈런, 12 도루를 기록했다. 6월 초까지 4 타자였다. 이때 한미일 통산 타율 1위였다. 한때 4할 타자라는 꼬리표를 달 수 있었다. 

 

데뷔 첫 억대 연봉 반열에 오르게 된다. 
시즌 풀타임을 뛰어본 적이 없었기에 16 시즌은 풀타임을 목표로 잡았다. 그 목표가 커리어 하이를 찍을 수 있게 했다. 


그 후 벌크업으로 인해 몸이 무거워졌으며 밸런스가 깨져 타격 능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체중이 103kg까지 불어나면서 주력 또한 상실해 버렸다. 장타를 만들어내기 위함이었지만 대실패였다. 이때 타격감은 물론 턱선까지 사라졌다. 


결국 2019년 롯데 자이언츠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그때에서 은퇴하고 싶었다. 핵심 이유는 첫사랑 같은 팀이었기에 정이 많이 들었다. 
또한 롯데에서 15년 차가 되면 선수 상조회에서 300만 원이 나온다고 한다. 14년을 채웠지만 나머지 1년은 버티지 못했다. 
엄청난 비상금을 만들어 낼 수 있었지만 실패했다. 

 

윤희상

최강야구 김문호최강야구 김문호
최강야구 김문호

2014년 윤희상을 은퇴시킬 뻔했다. 그것도 남자로서의 은퇴였다.
김문호의 강한 타구가 소중한 곳을 향했고 딱 맞는 순간 설마 했다고 한다. 윤희상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나 자신이 더 아팠다고 한다.  결혼 4개월 차 새신랑이었기에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프린세스 메이커, 가정 파괴자, 상하이 킴, 등의 별명이 붙었고 명현만보다 앞선 저승사자였다. 

 

윤희상은 낭심을 맞은 다음에 고통으로 인해 응급실에 실려갔고, 실려가는 동안 간호사의 손을 잡고 제발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병원에 가서도 낭심이 너무 부어 있어 검사를 받지 못했다. 평소 크기보다 2배나 부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한참 망설이다가 한 개가 없다고 해서 남자로서의 생활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어 위로가 되었고 다행히 회복할 수 있었다.


자선 경기에서 만나 절로 사죄했고 윤희상은 김문호의 소중한 곳을 겨냥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윤희상의 자녀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한화이글스. 은퇴

최강야구 김문호최강야구 김문호
최강야구 김문호

2000년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고 2020년 은퇴하게 된다. 
한화의 세대교체로 인해 1년 만에 은퇴했다. 마지막 경기는 서산에서 청백전이었고 경기 끝나고 스트레칭할 때 동료들에게 은퇴를 알렸다. 

 

TMI

김문호는 lg 트윈스 팬이었다고 한다 이병규의 타격폼을 보고 많이 따라 했다고 한다.

2016년까지 14개의 홈런만 기록했지만 유일하게 김문호에게 2개의 홈런을 내준 투수는 리퍼트였다. 
경기가 안 풀릴 때마다 나라 잃은 표정을 짓곤 한다.

 

이제는 아픈 손가락에서 벗어나 대타자로 활약하길 바라겠습니다.

'TV & 스타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지컬100 장은실  (0) 2023.02.16
일타스캔들 정경호  (0) 2023.02.15
일타스캔들 노윤서  (0) 2023.02.14
최강야구 이홍구  (0) 2023.02.10
2023 WBC 한국 경기일정. 경기방식  (0) 2023.02.09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